성산일출봉 탐방

성산일출봉 탐방안내

2000wt(청산 한원택) 2021. 8. 15. 09:10

일반재원

   ⁃ 문화재보호구역: 1,689,338(핵심지역: 518,824, 완충지역: 1,170,514)

   ⁃ 일출봉면적: 377,872㎡     ⁃ 일출봉높이: 180(해발)    분화구면적: 214,400㎡(백록담면적: 210,000㎡)

   ⁃ 분화구둘레: 1,704,86m    ⁃ 분화구직경: 600m    ⁃ 분화구깊이: 86,6

   ⁃ 일출봉둘레: 2,927m(성산읍 역사문화지 오름현황에서 발췌)

   ⁃ 비고(해발): 매표소부근 25,  등하산로 교차점50m,  1파고라 70m,  매점85m,  등경돌90m,  초관바위110m,

                   곰바위123m,  제2파고라151m,  일출봉정상 174m.    

   ⁃ 하산길 계단 수: 1,167(등반길 553, 하산길 614)    등반거리: 1,2km

★ 지정 및 등재, 인증현황

   ⁃ 제주도지방문화재 지정(제36호, 197399)

   ⁃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지정(420호, 2000718)

   ⁃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유네스코지정번호 1264, 2007년7월2일)

        ※ 유네스코등재유산명칭 :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

        ※ 등재유산 : 성산일출봉응회구,  한라산천연보호구역,  거문오름용암동굴계.(거문오름, 벵듸굴, 북오름굴,

                                                                     웃산전굴, 대림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 유네스코세계지질공원 인증: 2010년 10월 1일(제주도)

        ※ 제주도지질공원 13개 대표명소 : 한라산, 성산일출봉, 만장굴, 서귀포층중문 대포해안주상절리대, 산방산,

                                             용머리해안, 수월봉, 천지연폭포, 우도, 비양도, 선흘곶자왈, 교래삼다수마을.

    ⁃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 지정일 : 2002. 12. 16 (확대지정: 2019. 6. 19)

         ※ 면 적 : 387,194ha (제주도 전지역, 해안선에서 5.5km 이내의 해양구역 포함)

★ 탐방안내

   ⁃ 휴관일: 매월 첫째 월요일

   ⁃ 탐방구간: 유료입장→정상등반    무료입장→우뭇개동산 우도전망대, 우뭇개해안

   ⁃ 탐방소요시간: 정상등반 왕복 1시간 소요.

   ⁃ 탐방문의: 064-783-0959(관리사무소),  064-710-7908(탐방안내소)

★ 입장료        

구  분 개  인 단  체 적 용 기 준
어  른 5,000 4,000 25세 이상64세까지
청소년/군인 2,500 2,000 13세 이상24세까지
어린이 2,500 2,000 7세 이상12세까지

★ 찾아 오시는 길

   ⁃ 시외버스이용 : 제주공항(또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부일주도로 및 번영로 버스이용 성산리에서 하차(1시간 소요).

                        성산일출봉 매표소까지 도보이동(5분 소요).

                        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부일주도로 버스이용 성산리에서 하차(1시간 10분 소요).

                        중문우체국 앞에서 서귀포터미널(동부일주도로 버스환승) 경유 성산리에서 하차 후 도보이동.

   ⁃ 개인차량이용 : 제주시에서 동부일주도로 및 번영로 이용 성산일출봉 주차장 도착(주차장이용 무료).

                         서귀포시(또는 중문)에서 동부일주도로(또는 서성로) 이용 성산일출봉 주차장 도착.

 

성산일출봉의 명칭유례

성산일출봉의 옛 이름은 사시사철 검푸르러 청산(靑山)이라 하였으며 분화구를 청산안이라 하였다. 현재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 것은 분화구둘레에 빙 둘러선 바위봉우리가 마치 성곽과 군사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성산봉이라 하였고, 영주(제주의 옛 이름) 10경 중 제1경인 성산출일(城山出日)에서 비롯되어 성산일출봉이라 부르고 있다. 성산일출봉은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의 탐라순력도에 성산관일(城山觀日)로 표기하여 처음 소개되었다.

 

★유네스코 관련 로고

  ◇ 유네스코 (UNESCO)

유네스코는 유엔(UN) 전문기구로서 교육, 과학, 문화 등 지적활동 분야에서 국제협력을 촉진하고 세계평화와 인류발전을 도모하고자 국제연합 출범과 함께 19451024일 설립되었다. 유네스코의 약자(UNESCO)는 국제연합(United Nations), 교육(Education), 과학(Scientific), 문화기구(Cultural Organization)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1950614일 제5차 유네스코총회에서 정식회원국으로 가입했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

세계유산휘장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상호 의존성을 상징하고 있다. 중앙에 있는 사각형 문양은 인간이 만들어낸 틀(기술 및 영감의 결과물)이며 둘레의 원은 자연을 상징한다. 이 둘은 서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휘장은 지구(세계world)처럼 둥근 형태지만 그것은 동시에 보호의 상징이기도 하다. 세계유산은 유네스코가 197211월 제17차 정기총회에서 채택한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에 따라 지정한 유산을 말한다. 유네스코 3대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이다.

 

  ◇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세계지질공원로고는 지구라는 원형의 배경 속에 물결무늬 지층이 포함되어 있어 지구와 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질공원은 2004년 유네스코와 유럽지질공원의 협력으로 세계지질공원네트워크가 설립되었다. 지질공원은 지질학적 가치가 있는 지역의 지질과 생태, 고고, 역사, 문화적 자원을 활용한 지질관광으로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 프로그램이다.

 

  ◇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MAB 로고는 앙크(Anke: )와 지구의 여러 생태적 구분을 대표하는 색리본을 결합하여 디자인되었다. 앙크()는 생물을 나타내는 고대 이집트 표기로서 영원한 생명과 삶을 의미하며 건강, 행복의 뜻도 갖고 있다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며 문화가치를 유지하기 위하여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하는 지역을 말한다유네스코에서 선정하는 3대 보호지역(생물권보전지역세계유산세계지질공원) 중 하나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 해당 지역은 무분별한 개발이 억제된다. 유네스코(UNESCO)1971년부터 인간과 생물권 계획의 일환으로 생태계적 가치가 큰 곳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로고

파란색 : (해수 및 담수 등)

초록색 : , 관목지, 초지

흰 색 : 눈 덮인 산(물을 보유하면서 천천히 다른 시스템이나 바다로 되돌려 보냄)

빨간색 : 사막과 토지 (신중한 물이용이 필요한 육상

성산일출봉매표소 앞 탐방객
성산일출봉매표소 앞

★ 바위에 전해지는 설화

   ◇처녀바위

일출봉 등반로 왼편 첫 번째에 위치한 방사탑 처럼 생긴 구멍 뚫린 이 바위는 귀신이 인간을 다스리던 태고적에 한라산 산신이 이곳 성산에 군사를 풀어 진을 쳤는데 군사가 부족했다고 한다. 이에 산신이 옥황상제에게 군사를 더 보내주길 청하였으나 옥황상제국에도 군사가 부족하다 하여 군사를 보내지 못 하고 대신 음()의 정기를 내려주어 사내아이를 많이 낳게 하였다고 한다. 그 음의 정기를 고이게 한 바위가 이 처녀바위인데 바위 속엔 항시 물이 고여 있었다고 하며 또한 사람들은 바위 속에 고인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진촬영: 세계자연유산해설사 한 원 택

   ◇등경돌(燈檠石)바위

성산일출봉 등반로 중간 지점에 위치한 이 바위는 높이가 10m에 이르고 마치 등불을 올 려 놓은 대()처럼 생겨 등경돌이라 부른다. 제주섬을 창조한 거녀(巨女) 설문대할망이 매일 낮에는 하나뿐인 큰 치마로 한라산의 흙을 날라다 제주 오름을 만들었고 밤에는 이 바위 위에 불을 켜놓고 헤진 치마를 바느질 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바위이름이다. 구전에 의하면 김통정장군이 삼별초군에 쫓겨 제주섬에 들어와 일출봉아래 토성을 쌓고 진수(陣守)할 때 이 바위 위에 등()을 밝혔다고도 하고, 또 다른 전설은 옛날 전장으로 출정(出征)한 남정네의 아낙들이 남편의 무운(武運)을 빌고, 먼 길로 장사를 떠나던 장사꾼들이 횡재를 기원했다고도 한다. 옛 부터 마을사람들은 일출봉정상에 오를 때 등경돌 앞에 서서 마을의 무사안녕과 행운을 빌며 네 번 절을 하고 정상으로 오른 곤 했는데, 두 번은 설문대할망, 두 번은 김통정장군에 대한 것이다. 김통정장군은 말을 타지 않고도 하루에 천리를 달리며 활을 쏘지 않고도 요술로 적장의 투구를 벗길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사진촬영: 세계자연유산해설사 한 원 택
사진촬영: 세계자연유산해설사 한 원 택

    ◇초관바위(哨官巖)

사진촬영: 세계자연유산해설사 한 원 택
사진촬영: 세계자연유산해설사 한 원 택

제주도의 동쪽을 지켜준다는 세 개의 장군바위 중에서 세 번째로 지위가 높은 바위로 재물을 불리는데 재주가 뛰어났고 병사에서부터 진급을 거듭하여 장군이 된 바위라고 한다. 바위 밑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승진이 빠르다고 믿었으며, 선조 30(1597)에는 수산진을 천혜의 요새인 이곳 성산일출봉정상으로 옮겨 많은 군사가 주둔하였는데, 그때 수많은 군사들이 빠른 진급을 기원하며 이 바위를 어루만져서 바위가 없어질 것을 염려한 장군이 군법으로 바위를 만지지 못하게 하여 금마석(禁磨石)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곰바위

사진촬영: 세계자연유산해설사 한 원 택
사진촬영: 세계자연유산해설사 한 원 택

성산일출봉 등반로 초관바위 바로 윗 쪽에 위치한 이 바위는 형상이 암수의 곰 한 쌍을 닮았다하여 곰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제주도의 동쪽을 지키던 세 개의 장군바위 중에서 두 번째로 지위가 높은 바위로 밑에 보이는 졸병바위들이 모두 이 바위를 우러러보고 있는 형상이다. 장군이지만 성품이 온순하여 부하들을 형벌로 다스리지 않고 덕망으로 이끌었다 하며, 바위 밑을 지나가는 사람은 이 형상을 보고 겸양의 미덕을 배워 가정을 화목 시키고 싸웠던 친구와 화해하며 속인 사람을 용서하여 덕망이 높아진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해안지형의 변화(육계사주 陸繫沙洲)

육계사주(터진목 노란실선)                 사진촬영: 세계자연유산해설사 한 원 택

수성화산활동 전 성산은 제주도와 떨어져 있었던 아주 작은 섬이었다. 수성화산분출로 쌓여있던 분화구주변 외륜 경사면 능선이 파도와 바람 등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침식되었으며 침식물질들은 수 천 년 동안 파도와 해류에 의해 광치기해안 쪽으로 운반되어 계속 쌓이면서 모래언덕을 의미하는 육계사주(陸繫沙洲)가 완성되어 제주도와 연결되었다. 해방 전인 일제강점기 말까지 성산포는 지리적인 해상조건 때문에 일본인들의 거주와 함께 수뫼밑해안을 이용한 해상물류운송과 금융조합설립, 통조림공장, 단추공장 등이 가동되는 등 산업화가 크게 발달하였다. 또한 주민들은 이웃마을 왕래 때문에 육상경로가 필요했으며, 차량통행이 가능하도록 1930년대 초부터 육계사주에 석축을 쌓고 흙과 잡석으로 메워 약 30 m의 연륙교다리를 놓아 남쪽 옆으로 약 60 m의 시멘트방호벽을 설치하여 도로를 개설하였다. 그 후 관광객증가에 따라 2000년대 중반 현대식공법으로 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 포장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아주 독특한 지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곳을 성산리 마을에서는 터진목이라 부르고 있으며, 터진목 마을입구 쪽에는 지금도 방호벽 일부가 남아있다.

터진목입구 시멘트방호벽                     사진촬영: 세계자연유산해설사 한 원 택

★ 풍화혈 [風化穴]

풍화혈(성산일출봉 정상아래)                         사진촬영: 세계자연유산해설사 한 원 택

일반적으로 노두 또는 전석의 아래 부분 또는 일부분에 선택적차별적인 화학적 풍화로 암석의 입상붕괴(粒狀崩壞)가 이루어져서 벌집모양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암석의 약한 부분이 우선 오목하게 파이면 이곳이 우선적으로 더 침식을 받게 되고, 점점 더 커지면서 그늘이 생겨 주위보다 다습하여 선택적차별적인 풍화가 촉진될 수 있다. 또한 수성화산분출 시 쌓인 쇄설물에서 침식작용으로 작은 알갱이가 빠져나온 곳이 풍화작용으로 점점 커져가면서 동그란 풍화혈을 만들어 낸다. 사막에서는 주야(晝夜)의 온도차가 크고 바람이 심하여 대기 중에 각종 염류가 더 풍부하므로 광물들 틈에서 성장된 염정(鹽晶)이 입상붕괴를 더 촉진시키게 된다. 따라서 이 풍화혈은 열대 또는 아열대지방, 습기가 많은 해변, 그리고 건조 또는 아건조 지역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해변가에서는 특별히 화강암에만 국한되어 풍화혈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종류의 암석에서도 잘 나타난다.

 

★ 성산일출봉 분화구

사진촬영: 세계자연유산해설사 한 원 택

    ◇ 물이 고이지 못 하는 이유

수성화산활동으로 분출한 화산재는 낙하와 화쇄난류에 의해 쌓이면서 종종 사태가 일어나고 잘 발달한 응회암의 사층리구조 등 여러 종류의 층리가 완성된다. 수성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지는 이러한 층리구조는 많은 비가와도 지표면 아래 속으로 빗물이 쉽게 빠져 내려가 버리므로 수성화산체인 성산일출봉분화구에는 물이 고이질 못 하고 있는 것이다.

    ◇ 성산리 마을주민들의 분화구이용

조선시대 문헌에 의하면 분화구에는 수백그루의 귤나무를 심어놓은 과원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과거에 분화구 안에는 지역주민들이 소유하였던 사유지가 있었으며, 이곳에서 초가지붕을 이을 띠를 벌채 사용하였고 마을에서 물통이나 물허벅으로 물을 날라다가 소와 말을 방목하기도 하였다. 또한 성산초교를 비롯한 주변 초중고교 학생들의 봄 소풍장소로 자주 찾아온 곳이기도 하다. 주민들의 분화구이용은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으며, 분화구에서는 1986년 개봉한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이장호감독)2005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마이걸을 촬영하기도 하였다. 2000718일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420호로 지정 관리되면서 현재는 분화구출입이 전면 금지되고 있다.

    ◇ 성산봉수(城山烽燧)

제주방어유적인 봉수는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급보를 전하던 통신수단이다. 봉수는 산 정상에 위치하고 연대는 해안에 가까운 높은 곳에 위치하는 것이 봉수와 연대의 차이점이다.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된 봉수제도가 처음 기록상에 나타난 시기는 고려 중기(12-13세기)이며, 제주도에 봉수가 설치된 것은 조선시대 세종 때이다. 제주방어유적은 3성에 9진과 25봉수, 38연대와 환해장성이 있다. 봉수에는 봉수요원으로 별장 2, 봉군 4명 내지 12명으로 조직되어 3교대로 근무하였다. 성산일출봉분화구 동북쪽 정상에는 수산진소속의 성산봉수가 설치되어 북서쪽의 지미봉수, 남서쪽의 수산봉수와 교신하였다. 현재 성산봉수는 흔적이 남아있지 않는 상태이다.

   ◇ 분화구의 아흔아홉 바위봉우리 설화

한라산은 한반도 이남에서 제일 높고 식생 또한 전국 4천여 종 중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또한 화산섬 제주도는 곳곳에 곶자왈 등 울창한 숲을 많이 갖고 있다. 그럼에도 제주도에 맹수가 없는 것은 제주 동쪽 맨 끝자락에 위치한 성산일출봉의 분화구바위가 아흔아홉 봉우리로 100봉우리였다면 사자호랑이 같은 맹수가 날 것인데 한 봉우리가 부족해서 제주도에 맹수가 나질 않았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일출봉정상 탐방객                           사진촬영 : 세계자연유산해설사 한 원 택
                                                                                       하산로 독수리바위                 사진촬영 : 세계자연유산해설사 한 원 택

 

                                하산로 데크계단                                사진촬영 : 세계자연유산해설사 한 원 택
 하산로에서 우뭇개와 우도                 사진촬영 : 세계자연유산해설사 한 원 택